이제 두려울 게 없다- Diary


대학에 들어가면서 시작된 기나긴 김씨의 소개팅의 역사 중에서, 소개남과 결코 두 번 이상 만난 적이 없었던 것을 아는 사람은 모두 알고 있다. 항상 모- 아니면 도, 라는 마음 가짐으로 처음 만나서 마음에 안 들면 전화고 문자고 오는 족족 씹어대곤 했다. 하지만 사람은 변하기 마련인지, 아니면 꽤 괜찮은 사람을 만났기 때문인지 요즘 김씨는 지난 달 처음 만난 소개남과 계속 연락을 하고 있는 상태다. 당연히 얼굴도 여러 번 봤다. 밥도 먹고, 술도 먹고, 영화도 보고-



게다가 어제는 쌩얼까지 공개했다....................................


그리고 이건 결코 내가 원한 결과가 아니었다;

나를 집앞까지 데려다주며 우리 집을 파악한 소개남(내 주위에는 이미 안주남, 으로 개명당함;)이 오밤중에 술안주 가져다 주러 동네 출몰한 이후 내가 아프다는 말에 집 앞까지 왔다가 자는 걸 깨우지 못하고 그냥 돌아가는 상황을 벌이시며 종종 동네에 나타나곤 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괜찮았지. 그런데, 어제는 미남이시네요 잘 봤냐며 전화해서는 집 앞이라고 나오란다 !!!!!!!!!!

퇴근해서 집에만 오면 바로 샤워하고 자연인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김씨. 드라마를 보며 뒹굴거리던 밤 11시 경에는 당연히 쌩얼을 하고 있다. 그런데 집 앞이라고 나오래.............

내가 그렇게, 여자는 갑자기 나오라고 하면 못나간다고 강조했거늘- 빼뺴로 데이 때는 자기도 여자 마음 좀 안다고 미리 연락하고 왔으면서 어제는 왜 그냥 쳐들어 온 것이야;;;;;; 만나서 놀 때 내가 몇 번 '쌩얼 보면 못알아 보는 거 아냐?' 라고 말을 던지긴 했는데, 그것 때문에 확인 사살하러 온 걸까;


아무튼- 안주남께서는 어머니 심부름 때문에 밖에 나왔다가 내 생각 나서 과자랑 베스킨라빈스 한통 사왔다면서 손에 쥐어주고 갔다. 미안해서 차 타는 거 보고 간댔는데 춥다고 얼른 들어가라더라. 결국 간식봉지 받아들고 집으로 뽈뽈 들어갔다.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장렬하게 나의 쌩얼을 공개하며-_;
비록 사귀자는 말은 들었지만 술 마시면서 한 이야기라 내 마음대로 무효처리하고 대답도 안했는데, 사귀기도 전에 쌍판부터 공개하다니 진짜 굴욕이다... 그나마 피부라도 트러블 없이 좋은 편이라 다행이었지 여드름/ 아토피 라도 있었으면 아마 울면서 그냥 가라고 했을거다. 

그래도 쌍얼 공개하고 나니 속은 후련하다.  이제는 정말 두려울게 없달까; 못볼 꼴 다 보여주고 나니 마음은 편하구나-
내일 같이 저녁먹고 영화보러 갈건데 이제는 무슨 옷 입지- 등의 고민꺼리도 안 생긴다; 쌩얼도 봤는데 뭘 입고 간들 그것보다는 예뻐 보이지 않겠나.



하여튼 사귀지도 않는 남정네에게 쌍판 공개부터 하다니 이런 일은 또 처음이다.






아, 어떡해- Diary


이게 정말 현실인지, 믿기 어려운 일이 나에게 일어났다.

오랜만에 대학 동기들을 만나러 부산에 갔다가 집에 돌아오니 거의 12시가 다 되었더라. 돌아오는 차 안에서 소개팅남과 전화통화를 했고, 집에 온 후에도 다시 문자가 와서 자기도 (친한 동생 만났다가) 이제 집에 왔다 - 등의 대화를 나누었는데 내가 오늘 언니가 안 들어와서 혼자 있다고 하니 엄청 걱정을 하더라.
그러고 나서 내가 잠은 안오고 배는 고프다고 하니 그럼 뭐라도 먹을래- 하길래 시간이 너무 늦었다고( 이때가 벌써 1시쯤- 게다가 이미 화장 지운지 오래인 쌍얼 상태 김씨...절대 남자 만나러 나갈 수 없음;) 그냥 집에 있는 술이나 마시면서 잠을 청해야겠다고 했더니 답이 없네. 그래서 나는 아, 그 동생들이랑 놀면서 소주 + 삼겹살 함께 했다하니 잠들었나보다 생각했는데 갑자기 한 이십분 있다가 문자 와서는 아파트 입구에 있는 경비실 건물 손잡이에 안주꺼리 사서 걸어놨다고 가져가서 먹으란다!!!!!!!!!!!!


악!!!!!!!!!!!!!!!!!!!!!

이게 뭐야!



집도 먼 사람이,
소주도 마셨다면서,
내가 배고프지만 그냥 참고 술 마실 거라고 했더니 안주로 먹으라고
키세스, 치즈, 닥터유 감자 프로마주, 그리고 데운 하림 닭가슴살 스테이키 팩까지 사가지고 아파트 입구에 놓고 가다니!!!!!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진짜, 감동했다.
언니도 나를 버려놓고 남친이랑 놀러간 이 마당에 외간 남자가 나를 더 신경써주고 있어..............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캭!!!!!!!!!


머리가 복잡해서 그만 쓰련다.
드디어 내 인생에도 봄날이 오려는 건지-

자랑 중- Delicious



오늘 받은 빼빼로 군단.


일단 저 바구니는 소개팅남이 갑자기 동네에 와서 주고 간 것;  그냥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하는데, 내가 언니랑 쇼핑을 마칠 동안 계속 기다렸다길래 미안해서 같이 동네 달감에서 맥주 + 마른 안주 먹고 왔다. 옆에서는 닭 먹고 있는데 땅콩 씹어 먹으려니 참..................앞에 앉은 사람이 소개팅남이 아니라 쥬디나 정항우 같았으면 바로 통닭 추가해먹었을텐데 완전 안타까웠다.
여하튼 깜짝 방문 + 선물이 감동했음-

바구니 뒤에 숨겨진 후레이키- 는 내 속을 무던히도 썩이던 3학년 모 학생이 준 것. 생각지도 못했던 선물이라 엄청 놀랐다. 아직도 그 애가 나한테 저걸 왜 줬지, 하는 생각이 사실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 옆의 스폰지밥(...내가 너무도 싫어하는;) 봉투에는 이번에 나한테 엄청 야단 맞은 우리반 아이가 준 것. 길게 쓴 편지와 함게 거대 빼빼로가 들어있었다. 장문의 편지를 읽어보니 그 아이가 왜 그런 잘못을 저지르게 되었는지 이해도 되고 마음이 아파서 나도 답장을 써주었다. 나의 편지를 받고 아이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는 미지수 랄까.
그 앞의 작은 빼빼로 상자들과 비닐 포장이 된 것들은 모두 우리반 여학생들이 준 것. 돈이 없어 빼빼로는 못 샀다며 땅콩캬라멜을 주고간 귀여운 아이도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구니 앞의 저 투명한 하트 케이스의 초콜렛은 앞의 스폰지밥을 준 여학생과 같은 사건에 연루되어 나에게 매우 심하게 꾸중을 들은 남학생이 준 것. 진심으로 화를 내고 야단치면서 그 아이의 잘못을 지적하고 부모님께도 알렸기 때문에 본인으로써는 나를 원망하고 미워할 법도 한데 오늘 아침에 곱게 포장된 상자를 건네기에 정말 입이 딱 벌어졌다. 별 다른 말도 없이, 편지도 쓰지 않고 선물만을 건네었기에 그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 것은 그 아이 나름의 사과의 제스쳐가 아닐까 짐작이 된다.


저 모든 선물들(소개팅남의 바구니는 제외. 저건 방금 받아옴;)을 가방에 쓸어담고 돌아오는데 기분이 참 묘하더라. 어제 집안일 때문에 속상하고 슬퍼서 와인 한병을 그 자리에서 다 마시고 엉엉 울고 잠이들어 학교 가기가 참 힘든 아침이었는데, 돌아올 때는 나를 생각해주는 아이들의 마음이 고맙고 사랑스러워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기분을 맛보게 되었으니 정말 사람 일은 한치도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듯 하다.


어쨌든, 행복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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